상표권은 등록받았다고 끝이 아닙니다. ‘사용’하지 않으면 3년이 지난 뒤 누군가 불사용 취소심판을 청구해 등록을 취소할 수 있고, 그때 입증 책임은 상표권자에게 있습니다. “우리 나름 썼는데 왜 취소되나요?”라고 할 때, 법원은 어떤 사용을 인정하고, 어떤 사용을 인정하지 않는지를 판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만들어 왔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상표 판례에 수록된 실전 사례를 중심으로, 불사용 취소심판에서 ‘사용’이 인정된 경우와 인정되지 않은 경우를 정리합니다. 1편에서 다룬 상표 포트폴리오 전략과 이어서, “등록 후 어떻게 써야 권리를 지킬 수 있는지”를 실무 관점에서 잡아 보겠습니다.
1. 불사용 취소심판이란? – 3년의 법칙과 입증 책임
상표법은 “등록 후 정당한 이유 없이 3년 이상 국내에서 사용하지 않은 상표”에 대해서는 심판으로 그 등록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상표는 사용되어야 가치가 있다는 생각과, 알박기처럼 등록만 해두고 남도 못 쓰게 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입증 책임입니다. 취소심판이 청구되면 “3년 이내에 정당하게 사용했다”는 사실을 상표권자(피청구인)가 증명해야 합니다. 청구인이 “안 썼다”를 증명할 필요는 없고, 상표권자가 “이렇게 썼다”를 증거로 보여줘야 합니다. 증명하지 못하면 해당 지정상품에 대한 등록이 취소됩니다.
그래서 어떤 행위가 ‘상표의 사용’으로 인정되는지가 실무에서 생명줄입니다. 판례는 “동일한 상표”의 범위, “출처표시로서의 사용”, “명목상 사용” 여부 등을 하나씩 짚어 왔습니다.
2. 사용이 인정된 사례: 2017허7548 (런던베이직 vs HULU)
2.1 사건 개요
2017허7548 사건은 원고(주식회사 런던베이직)가 교복·캐주얼 브랜드 관련 등록상표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피고(HULU, LLC)가 불사용 취소심판을 청구한 사건입니다. 특허심판원은 “심판청구일 전 3년 이내에 지정상품에 정당하게 사용되었음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등록 취소 심결을 내렸습니다. 상표권자인 런던베이직이 특허법원에 심결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특허법원은 원고(상표권자) 승소로 심결을 취소했습니다. 즉, 취소심판의 결과를 뒤집고 상표권을 유지시킨 판결입니다.
2.2 상표권자가 주장한 ‘사용’ 사실
원고(런던베이직)는 다음과 같은 사용 사실을 주장했습니다.
- 2013~2014년경: 지정상품인 교복 셔츠, 블라우스 등을 교복판매점 등에 공급하면서 발행한 전자세금계산서에 해당 등록상표를 표시하였다.
- 2014년 8월경: 교복 셔츠·블라우스에 관한 광고전단지 8,000부를 제작 의뢰하면서 거래명세서에 등록상표를 표시하였고, 전단지에도 등록상표를 표시하도록 하였으며, 그 광고전단지를 100여 곳 이상의 교복판매점에 우편으로 발송하였다.
즉, 제품에 직접 상표를 붙여 판매한 물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금계산서·거래명세서·광고전단지를 통해 상표를 사용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2.3 상대방(HULU)의 반박
피고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습니다.
- 세금계산서·거래명세서·광고전단지는 실제 거래관계를 정확히 반영했다고 신뢰하기 어렵다.
- 그 서류에 사용된 표장은 등록상표와 외관이 달라 동일성이 인정되는 표장이 아니다.
- 설령 동일성이 인정되더라도, 지정상품(셔츠·블라우스)에 직접 부착한 것이 아니라 광고에만 표시했을 뿐이므로, 자타상품을 식별하기 위한 출처표시로서의 상표 사용에 해당하지 않는다. 단순히 불사용 취소를 면하기 위한 명목상 사용에 불과하다.
요약하면, “광고·전단지만으로는 상표 사용이 아니다”, “명목상 사용이다”라는 주장이었습니다.
2.4 법원의 판단 – 사용 인정
특허법원은 원고(상표권자)의 사용을 정당한 사용으로 인정했습니다.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원고가 심판청구일 전 3년 이내에 지정상품인 교복 셔츠·블라우스 등에 관한 홍보전단지를 제작·반포하고, 그 전단지 상단에 원고가 제조·판매하는 셔츠·블라우스 등에 관하여 등록상표와 거래통념상 동일한 형태의 표장을 표시하고, 하단에 “HUR(후르)는 ㈜런던베이직이 새롭게 만든 캐주얼 브랜드입니다”라고 기재하여 전국 교복판매점에 우편 발송한 사실이 인정된다.
- 그 당시 지정상품인 교복 셔츠·블라우스 등이 국내에서 정상적으로 유통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원고의 위 광고행위는 “단순히 불사용 취소를 면하기 위하여 명목상으로 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 등록상표가 셔츠·블라우스 등 지정상품에 직접 부착되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는, 광고에 표시된 상표가 지정상품의 출처표시로서 사용된 것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
즉, “제품에 직접 붙이지 않고 광고·전단지에만 썼다”는 이유만으로 사용을 부정하지 않았고, 실제로 해당 상품이 유통되고 있는 상태에서의 광고·전단지 반포는 정당한 상표 사용에 해당한다고 본 것입니다. 동시에 “동일한 상표”에는 등록상표 그 자체뿐 아니라 거래통념상 동일하게 볼 수 있는 형태도 포함된다는 법리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 Tip: 평소 세금계산서·거래명세서·광고전단지에 상표를 정확히 기재하고, 제작·발송 일자와 유통 경로가 남도록 보관해 두면, 불사용 취소심판에서 “정당한 사용” 입증에 큰 도움이 됩니다.
3. 사용이 인정되지 않는 법리: 명목상 사용 – 2012후2463 등
반대로, 어떤 사용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기준도 판례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2012후2463 전원합의체 판결 등에서 법원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등록상표가 광고 등에 표시되었다고 하더라도,
(1) 상품의 출처표시로서 사용된 것이 아니거나,
(2) 지정상품이 국내에서 정상적으로 유통되고 있거나 유통될 예정이 아닌 상태에서,
단순히 등록상표에 대한 불사용 취소를 면하기 위하여 명목상으로 등록상표에 대한 광고행위를 한 데에 그친 경우에는,
등록상표를 정당하게 사용하였다고 볼 수 없다.
즉, “심판 나왔으니까 급하게 한 번만 광고한 경우”처럼, 실제 거래·유통과 무관한 명목상 사용은 정당한 사용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2017허7548에서 법원이 “지정상품이 국내에서 정상적으로 유통되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유통이 없이 광고만 있는 경우는 사용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실무에서는 취소심판 청구를 접한 뒤에야 전단지를 한 번 뿌리거나, 홈페이지에만 올려두는 식의 대응은 명목상 사용으로 의심받기 쉽습니다. 평소부터 지정상품과 연결된 거래·광고·증빙을 쌓아 두는 것이 상표 전략입니다.
4. 정리: 포트폴리오와 이어지는 ‘사용’ 전략
1편에서 다룬 상표 포트폴리오 전략은 “무엇을, 얼마나 출원할까”의 문제였습니다. 출원만 하고 쓰지 않으면 3년이 지난 뒤 불사용 취소심판으로 빼앗길 수 있으므로, 꼭 쓸 상표·지정상품을 선별하고, 등록 후에는 실제 사용과 증거를 관리하는 것이 한 세트입니다.
- 인정되는 사용: 지정상품에 대한 실제 유통이 있는 가운데, 세금계산서·거래명세서·광고전단지·쇼핑몰·홈페이지 등에 등록상표(또는 거래통념상 동일한 표장)를 출처표시로 사용하는 경우. 2017허7548은 그 전형적인 예입니다.
- 인정되지 않는 사용: 지정상품이 유통되지 않는 상태에서 불사용 취소를 면하기 위해 명목상으로만 한 광고·게시. 2012후2463 등에서 정리된 법리와 같습니다.
상표 전략은 출원 설계와 등록 후 사용·증거 관리가 함께 갈 때 완성됩니다. 포트폴리오를 잘 설계했다면, 그다음은 “실제로 쓰고, 흔적을 남기는” 단계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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